박명희 적십자 봉사원은 25년간 적십자에서 많은 어르신들에게 봉사해왔지만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박명희 적십자 봉사원은 25년간 적십자에서 많은 어르신들에게 봉사해왔지만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서울복지신문=우미자 기자]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 많아서 그만큼 더 많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해요.”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한 생신잔치 봉사 현장에서 만난 박명희 적십자 봉사원은 어르신 결연 봉사 덕분에 행복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적십자 봉사로 만난 새로운 가족

박명희 대한적십자사 봉사원은 1992년 6월부터 대한적십자사 봉사원으로 가입해 봉사를 시작했다. 올해로 만 25년, 봉사시간으로는 1만 9천여 시간이 넘는다. 어르신 결연봉사만 25년 째, 무의탁 어르신들에게는 말 그대로 딸 같은 존재다.

박명희 봉사원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동작지구협의회 소속으로 주로 홀몸 어르신을 위한 결연 봉사를 펼쳐왔다. 현재는 대한적십자사 희망풍차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몸이 불편한 어르신을 대상으로 방문 목욕봉사부터 점심식사, 방문 말벗활동, 밑반찬 및 생계 구호물품 전달 등 독거어르신을 위한 가정방문 활동을 정기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12일 무의탁 어르신들을 위한 대한적십자사 동작․관악희망나눔봉사센터에서 주관한 생신잔치에서도 박명희 봉사원은 점심식사를 나르는 동안에도 만나는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모셨던 어르신들을 더 이상 못 뵙게 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파요.” 지난 25여 년 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덧 일흔이라는 나이가 되었다는 박명희 봉사원. 세월이 흐르면서 적십자 희망풍차 결연을 맺고 있었던 4분의 홀몸 어르신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일도 생겼다.

“한 번은 보라매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결연을 맺고 있던 어르신이 사망하셨으니 보호자가 와서 수습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를 딸처럼 생각해주시는 분이었는데...” 박명희 봉사원은 기억에 오래 남는 어르신 한 분이 계시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오래 전부터 결연활동을 하면서, 아버지처럼 극진히 간호했던 무의탁 어르신이 계셨다. 밥을 지어서 드려도 밥 먹기 전 한 숟갈을 덜어 직접 먹여주실 정도로 아버지와 딸보다도 서로 더 알뜰살뜰히 챙기는 사이였다. 어느 날 결연을 맺고 있던 어르신이 간암에 걸려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자, 박명희 봉사원은 밤낮으로 어르신을 고사하는 것은 물론, 일이 생겨 어르신을 모시지 못할 때는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을 찾아가 간호를 부탁할 정도로 애를 썼다.

“한 달 간 모시다가, 좋은 날에 떠나시게 됐는데,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이 무의탁 어르신은 돌아가시기 전 가장 가까운 보호자로 박명희 봉사원을 선정했고, 박명희 봉사원은 연락을 받은 그 길로 병원으로 달려가 장례식장을 지키며 어르신의 마지막 길까지 배웅했다.

적십자 봉사에서 배운 것

“25년간 적십자에서 많은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뵈며 봉사해왔지만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나누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아직도 많습니다. 오랫동안 적십자에서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남을 도왔던 일은 본인은 잊을 수 있어도, 정작 도움을 받은 사람은 잊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돈을 얻기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자부심과 행복을 얻습니다.” 박명희 봉사원은 봉사를 통해 얻어가는 점들이 많아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 전에는 나 잘난 줄 알고 살았죠. 적십자에서 선후배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저를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법,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섬기는 법을 배우게 됐습니다.”

결연을 넘어선 인연

“아흔, 백세가 넘어도 계속 어르신들의 딸로서 봉사하고 싶어요. 결연을 맺어 매주, 매달 봤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더 이상 볼 수 없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지만, 다시 저를 딸같이 생각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힘이 납니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밥을 지어드리면 항상 한 숟갈을 떠서 제 입에 넣어주시던 어르신을 만날 때”라고 답하던 박명희 봉사원은 사뭇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몇 년 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어깨며 손발이며 아픈 곳을 주물러 드리면서 말벗을 해드린 어르신이 어느 날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셨을 때가 또 기억에 남는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병치레 없이 건강하시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며 웃던 박명희 봉사원은 봉사를 위한 결연을 넘어 마음으로 인연을 맺고 있었다.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