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사랑과One star with love, 45.5X45.5cm, Oil Painting with Phrainting process, 2016
별 하나에 사랑과One star with love, 45.5X45.5cm, Oil Painting with Phrainting process, 2016

[서울복지신문] 파울 클레는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현대회화의 근원은 무엇일까.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고통, 비애, 외로움,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일까. 빈센트 반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은 19세기 인간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그렸다.

이 작품은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제목으로 붙여 보았다. 대지의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대기를 표현한 것이다. 농부들은 때가되면 논을 갈고 밭이랑을 만들고 풀을 뽑는다. 그런 다음 그 곳에 씨를 뿌린다. 대기는 안개와 습기로 충만해 있다. 그러한 나의 땅을 떠나 왔을 때 나는 그곳을 그리워 했다.

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아이들은 땅 바닥에 미지의 선을 긋는다. 공깃돌을 던지고 집을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한다. 다시 흙바닥에 선을 긋는다. 물고기도 그리고 동그라미와 알 수 없는 선들을 긋는다. 인간의 긋는 행위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암각화와 세계 곳곳에 흔적으로 남겨놓은 선들의 형태들은 오랜 시간 풍화의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도 남아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지구의 바닥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것은 놀이와 염원의 아름다운 흔적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흔적들은 여러 가지의 다른 형태를 띤다. 그 중에서 인간이 발로 흔적을 남긴 것이 있다. 그것은 길이다. 길은 들짐승과도 함께 만든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걷지 않는 다면 그 길은 동물들의 길로만 남을 것이며 또 사라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것을 드로잉(판화적) 과정의 이미지로 상상해 보자. 길을 가는 것은 풀이 자라지 않게 만들어 땅의 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반면에 주변 초록의 나무들은 더욱 빛깔을 생생하게 뽐낸다. 새의 시선으로 보는 부감법으로 촬영한다면 자유로운 흑색의 곡선이 되어 굽이굽이 흐를 것이다. 근대 문명 이후는 발자국으로 만들어내는 지문의 연속이다. 땅에 신발로 찍어내는 그림의 선을 본다. 그것으로 음과 양을 만든다. 주변 산하의 풀들과 나뭇잎을 자연의 물감이라고 상상해 보자. 이제 자연은 거대한 프레인팅(Prainting=Printing+Painting)의 세계다. 인간이 도구인지 자연이 도구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의 대지를 빼앗겼을 때 우리는 그리움의 선을 새겼다. 그것은 기억의 고집이며 상처를 대지에 긋는 것이다. 동판화를 만들 때 선을 그어 부식하거나 직접 판에 강한 철침으로 생채기를 내어서 판각하는 기법이 있다. 그 상처에 잉크를 넣고 종이에 찍어내는 것이다. 자연에서 땅을 파고 밭을 일굴 때 비가 오는 광경을 떠올려보자. 그 깊게 파인 고랑에 빗물이 자연스럽게 배일 것이다. 그것은 대지의 판그림이다. 여러 물감의 층들로 뒤덮인 표면을 갈아엎듯 깊게 긋는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근원의 행위다. 그린다는 것은 인간유희의 근원적인 작동이다. 위의 그림은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그리려 한 것이며, 별을 노래하며 고향을 염원한 시인의 비애극과 꿈을 다룬 것이다. 멀리 어렴풋한 산등성의 실루엣은 아직도 멀기만 한 우리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다. 8월이면 생각나는 광복이 ‘별 헤는 밤‘을 떠올리게 한다. 저기 대지는 갈 수 없는 땅이며 우리가 살았던 미지의 땅이다. 상처들의 땅이며 사랑의 땅이다. 우리는 별을 그리워했고 별이 된 그를 사랑했다.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교수 권 순 왕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