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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리리의 This is me⑦ 장 미쉘 바스키아 전시회를 다녀와서

기사승인 2021.02.09  07: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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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 양리리 서대문구의회 의원, 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 서대문도서관친구들 대표

[서울복지신문]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전시회를 다녀왔다. 지난해 10월 개막한 바스키아 전시회는 코로나19 영향에도 1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 중 2명은 나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그의 그림이 보였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그의 삶이 보였다.

오늘날 작품가가 1,200억을 호가하는 바스키아는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회계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이다. 17세 가출로 노숙을 하던 그는 1980년대 뉴욕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 1988년 28세의 어린 나이로 요절했다. 마약중독이었다. 매우 친밀한 관계였던 미국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의 약물중독을 악화시켰다. 부유한 집에서 성장한 그는 어릴 적 어머니와 브루클린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을 함께 다녔다. 7세 때 길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골절되었고 비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 달 동안 입원하게 된 그에게 어머니는 해부학 서적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을 줬다. 처음으로 인체의 구조와 해부학적 지식을 습득한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드로잉을 보면서 사고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지식들은 그의 내면에 자리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연결되면서 뼈와 해골, 신체기관이 그대로 노출되는 독창적인 도상으로 나타났다.

바스키아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기자물음에 “재능도 있죠” 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로 작품은 독보적이고 창의적이다. 사후 3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20대가 열광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 나갔다. 비주얼적인 끌림도 있지만 작품 속 곳곳에 녹아있는 혐오와 편견, 차별에 대한 저항이 작품에 더 매료되게 만든다. “내가 아프리카계 유색인인 게 내 성공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날 아프리카계 아티스트들과 견줄 것이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들과 비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한다. 미술관에 같이 간 여자친구 ‘수잔 멀록’에게 “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을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라고 얘기했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려준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 차별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지난해 5월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9분간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플로이드 죽기 직전 말한 “숨을 쉴 수 없다”는 BLM(Black Lives Matter) 인종차별 항의 시위의 상징적 구호가 되기도 했다.바스키아는 미술계에서는 유명인이었지만, 일반 사람들 속에서는 마이클 스튜어트와 비슷 외모의 흑인일 뿐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었던 스튜어트의 사망 사건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뉴욕지하철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있던 흑인 마이클 스튜어트는 6명의 백인 경찰에게 붙잡힌 지 30분만에 경찰서가 아닌 응급실로 실려가 사망한다. 그는 바스키아처럼 레게 스타일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다. 반면 키스 해링(Keith Haring)은 자기도 몇 차례 경찰에게 붙잡힌 적인 있었는데, 그는 평범해보여서 그때마다 경찰들이 꺼지라면서 놓아주었다고 한다(1983년 9월 29일 앤디 워홀 일기에서 발췌). 뉴욕지하철에 그린 그래피티로 유명해진 화가 키스 해링은 백인남성이다.

한국을 돌아봤다. 미국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차별이나 혐오, 편견은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들만이 저지르는 잘못도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소소하게 일어난다. 미혼과 비혼, 다문화, 종교 등 다수와 다르게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한 이들에 대한 거부감. 혹은 세대갈등, 남녀갈등 같은 선택이 아닌 시대와 생물학적인 다름에도 우리는 혐오와 편견,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신이 삶이 존중받기 원하는 것처럼 타인의 삶도 존중받기 원함을 기억하자. 다가올 설의 넉넉함처럼. 

   
▲ 바스키아와 앤디워홀                           전시관에서 양리리 의원 사진 촬영

양리리 seoulbokji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서울복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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