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시골에서 자라 처음 서울을 구경한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습니다. 지금은 두세 시간이면 족히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그 때는 완행열차 밖에 없어 예닐곱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기차를 탔다는 긴장감에 긴 터널을 지날 때 심하게 들려오는 기차 바퀴소리와 희미한 불빛만이 비추는 어두운 열차 안의 분위기가 더해져 얼마나 놀랍고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두 주먹을 꼭 쥐고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나를 위해 주변의 어른들이 귀신놀이로 긴장감을 풀어주는가 하면 서울까지 터널이 몇 개 있는지 세어보자며 함께 놀아주시던 그날의 기억이 가슴 한 곳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경제위기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초조함과 긴장감, 계속되는 사회적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코로나블루’를 겪는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늘고 있습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로 인해 모든 게 위축되어 가는 중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봄날을 헤아리며 어떻게 또 다른 새날을 기약해야 할지를 곰곰 생각하고는 합니다. 언뜻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 것도 그래서 일 것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네 몸이 화석처럼 굳어가고 무감각해지며 육체와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너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가? 분명하게 깨달은 것과 알고 있는 내용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 내적인 숙명이 나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긴장이 된다. 친구여,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무거운 명제 아래 던져진 질문은 ‘무엇을 깨달으며 삶의 매듭을 묶고 살아가야 하는가?’, ‘분명한 내적인 소명에 따라 영혼까지도 자유롭게 진실할 수 있는가?’, ‘가족, 직장동료, 지역사회구성원,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남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차례차례 이어집니다. 나 자신에게 깊이를 강요할수록 점점 더 부끄러움의 터널에 갇히게 된 것만 같습니다.

코로나19와 사회경제적 어려움 앞에서 개인을 향한 부끄러움의 터널이든, 사회 모든 구성원의 행복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보장의 취약한 터널의 깊이가 어떠하든,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과 배려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때, 긴 터널의 시간을 단축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새해가 밝고 이제 또 다시 새날을 기약합니다. 여전한 터널 안에서 속을 끓이고 있으나 분명 터널의 끝은 희망일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우리 모두 더 큰 희망의 증인이 되기 위해 오늘의 시련을 용기와 의지로 극복해 가기를 소망합니다. 환경이 어렵고 여건이 녹록치 않아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오늘의 이 시간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우리 모두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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