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일상을 마비시킨 코로나19가 무기력감에 빠져들게 합니다. 방역당국이 최선의 대책과 후속조치를 쏟아내고 있지만 늘어나는 확진자 수만큼 불안요인이 커지고 있습니다. 불투명한 오늘이 미래를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조에 달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뿐만 아니라 회사원,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공황상태로 몰아 심성이 피폐해져가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요.

가뜩이나 팍팍해져가는 세상에 코로나까지 득세를 부리니 후텁지근한 장마철의 불쾌감이 극에 달한다는 불만 섞인 말들이 이어집니다. 아예 희망이 없다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허탈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자칫 희망을 상실한 채 낙망의 경지까지 이르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감마저 들게 합니다.

지금의 내 생각으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희망은 생명의 끈이고 삶의 원천이기에 희망을 놓을 때 행복으로의 기대감은 사라지게 되니까요.

‘행복함’이 있으면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행복한 생각, 행복한 마음을 가질 때 코로나19의 불안도 잠재울 수 있는 ‘심리적 백신’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누구나 행복을 갈망하지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집착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부족한 게 없다고 해도 그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행복을 단순히 물질의 부유나 명예에서 찾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단적으로 ‘행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복과는거리가 먼 것 같이 보여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지요. 결국 자신이 찾는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뜻입니다.

괴테의 시 가운데 ‘앉은뱅이 꽃의 노래’가 있습니다. 어느 날 들에 핀 한 떨기 앉은뱅이 꽃이 양젖을 짜는 순진한 시골처녀의 발에 짓밟혀서 시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앉은뱅이 꽃은 조금도 자신의 처지를 서러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무참히 꺾이지 않고, 티 없이 맑은 시골 처녀에게 밟혔기 때문에 다행스러우며 그나마 꽃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만일 개구쟁이나 짓궂은 술꾼들의 손에 꺾이고 말았다면 얼마나 서글펐을까? 그러나 순진한 처녀에 의해, 비록 생명을 다하지 못한 채 지고 말았지만 앉은뱅이 꽃은 ‘그래도 행복한 기분’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먼저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희망을 찾고 행복해 한다는 ‘희망’으로 주변을 보며, 환경과 여건의 힘듦을 우선 내려놓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쪽보다 상대 쪽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한 목적으로 나 스스로 먼저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행복과 불행 가운데서 불행을 생각하고 그 쪽을 선택한다면 결국 인생은 불행해지게 됩니다. 그 불행은 상대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환경을 조장하게 되지요. 불행의 전파력은 코로나19의 확산 세보다 더 빠르다고 느껴집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힘들다고 말하면 힘들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입니다. 마음과 말을 다스려 불행을 부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실제 상황은 엄중하고 현실은 절망적이라고 해도 오늘의 이 시간은 단연코 지나가고 맙니다. 그게 이치지요.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또한 무슨 일을 하든지 수시로 행복을 선택함으로써 불행의 그늘에서 과감히 떠나야 합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행복의 시간은 찾아옵니다. 그 행복을 선택하기 위해 오늘도 희망을 마음에 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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