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훈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장
김현훈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장

[서울복지신문] 얼마 전 정치지도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이 자신을 내려놓았습니다. 항간에서는 아름다운 승복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승복(承服)은 ‘어떤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 때 자신이 주장을 버리고 따르는 행위’라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 입니다.

승복 자체를 ‘아름답다’고 할만큼 격상시킬 것은 아니지만, 한 여당 경선주자였던 후보자의 승복 사실을 놓고 보면 ‘아름다운 승복’이란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승복’에 진실을 더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로써 한 주체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하였다는 부연설명이 따르게 됩니다.

이 말은 바꿔 생각하면 지금까지 승복다운 승복이 없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만큼 승복이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 흔치 않았기에 그러한 행위가 감동적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감동적인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도 감동은 아무나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아추구로 인한 자신의 주장을 소리 높이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경쟁상대를 흠집 내기 위해 네거티브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한 모습이라고 할 때, 일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상대의 주장을 관철 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사건을 떠올려 보면 승복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잘못된 관행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라 해도 논리적으로 포장하고 과장되게 밀어붙이면 먹힐 수 있다는 독선으로 승복과는 거리가 먼 ‘거래’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승복이 없는 사회는 각박하고 이기주의가 판을 치며,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승복이 자신의 주장을 버리고 따르는 것임을 말할 때, 자신의 주장을 접는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한다는 뜻이 되고, 그것은 진정한 배려가 없으면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주장이란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주장을 펼친다면 갈등과 대립의 각(角)을 세우게 될 뿐 화해와 관용과 화평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창과 방패의 관계로 서로에게 치명적인 결과마저 안겨주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승복이란 정치인을 떠나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연인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즉 관계 지향적인 우리의 사회구조를 볼 때 승복은 결코 빼놓을 수 없을 정도의 ‘숭고한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잊혀 질 만큼 오래 전에 라면 한 그릇을 놓고 서로에게 배려하던 장면의 광고 문구가 떠오릅니다. 당시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그랬듯이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인정, 그리고 승복이 생활화된다면 사회는 한결 아름다워지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시기와 다툼이 횡행하는 사회일수록 승복은 탄산음료와 같이 속을 탁 트이게 하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합니다.

사회질서를 위해 양보가 우선이듯이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서는 ‘승복정신’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메마른 인생에 생수와도 같은 감동을 주는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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